이유는 난민인가? H0SSEIN JAVAHERYNIA

1986년부터이 모자헤딘 조직(M.P.O.I.)을 소개해주어 정치적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주로 모자헤딘 조직에서 이슬람공화국 지도층 반대를 외치는 전단지를 써주면 그것을 중간전달자로부터 받아 인적이 없는 밤시간에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하였습니다. 또한 테헤란에서 또 하나의 그룹을 만들어 ‘모자헤딘을 지지하자. 현 이슬람공화국 지도층들은 전원 사퇴하라.’와 같은 메시지를 벽에 남기기도 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많은 학생 및 젊은 사람들과 이야기하여 그들을 모자헤딘 조직으로 이끌었습니다. 저희는 그런 활동을 1994년까지 이어갔습니다. 그러던 1994년 어느 날, 저는 모자헤딘 조직의 한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 사람을 통해 8월 6일날 카즈빈(Qazvin) 시내에서 데모를 한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날 저는 두 명의 친구와 친구 차를 타고 일찍 카즈빈(Qazvin) 시내로 나가 데모에 참가 했습니다. 그날 많은 사람들이 죽고 다쳤습니다. 그리고 체포되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첨부자료 ‘Human Rights Watch, ‘IRAN’의 4페이지를 참고해주시기 바랍니다. http://.hrw.org/reports/1995 /WR95/MIDEAST-03.htm 하지만 저희는 도망갔습니다. 그러나 가는 길에 고속도로 통행티켓을 사기 위해 검문을 받는 장소가 있었고, 그곳에서 저희는 세파팟사랑(sepah pasdaran, 이란은 한국과 달리 3~4가지의 경찰이 있는데 ‘세파팟사랑’은 그 중 하나 입니다.)과 비밀경찰에 의해 단속이 되었고 검문을 받았으며 그 자리에서 데모를 참가한 것에 대해 의심을 받아 체포되었습니다. 저는 그리하여 1994년 8월 6일부터 21일까지 15일 간 조사를 받은 후 심하게 고문 받았습니다. 그리고 35일이 지난 후인 1994년 9월 26일부터 12월 10일까지 두 달 반 수감되어 고문을 받았습니다. 저를 풀어 주면서는 다시 한 번 잡히면 살 수 없을 것이라는 말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저를 감시했습니다. 이란에서는 모자헤딘 조직에서 활동을 하면 죽을 수도 있습니다. 첨부자료 ‘Iranian Man at risk of execution’을 보시면 그와 관련한 한 사례를 보실 수 있습니다. IRANIAN MAN AT RISK OF EXECUTION UA:240/12 INDEX:MDE 13/058/2012 Iran 그는 2012년 9월 10일 자로 사형선고를 받았습니다. 그로부터 약 8개월 후에 공원에서 모자헤딘 조직의 한 사람이 저를 찾아왔습니다. 그는 저에게 “지금 그들은 당신을 감시하고 있다, 당신의 일생이 위험하다. 될 수 있으면 이란을 나가라”라는 말을 해주었고, 저는 그날부터 지금까지 모자헤딘 조직과 그 어떠한 연락을 취하고 있지 않습니다. 저는 1997년까지 대학에 있었습니다. 그 당시 저는 수업이 끝나고 베를린에서 테러리스트로 활동하고 있는 이슬람교의 리더를 비판하는 토론을 가졌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활동으로 인하여 저는 비밀경찰들에게 제 정치적 활동에 대한 사실들이 밝혀졌으며 피난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제가 정치적인 대화를 나눈 이후, 이란의 비밀 경찰은 차로 저를 들이받았습니다. 그로 인해 지금까지 그 상처와 고통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점은 그들의 정치적인 공격의 결과로 제 다리가 아직 심각한 문제에 놓여 있다는 것입니다. 한국에 입국 한 이후 3번의 수술을 하였으며 두 달 후에도 다시 수술을 해야 하는 상황에 있습니다. 사고가 일어난 당시, 이란의 비밀 경찰들은 심지어 제가 치료를 받는 병원 안에서도 저를 고문하고 통제하였습니다. 그것이 제가 한국에 오게 된 결정적인 사건이 되었습니다. 한국 입국 후 2003년에 저는 난민신청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2005년에 난민 인정을 불허 받았습니다. 출입국은 저에게 한국을 떠날 기한을 5일 밖에 주지 않았습니다. 그 누구도 그 다음에 제가 어떠한 조치를 취해야 하는 지에 대해서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저는 다시 이란에 돌아가는 것이 너무 무서웠습니다. 이란으로 돌아갈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그 때부터 한국에 숨어서 살았습니다. 이것 때문에 저는 제가 머물던 곳에서 더 이상 살 수 없어 미아삼거리의 친구 집에서 같이 지내게 되었습니다. 그곳에서 저는 IFIR(The International Federation of Iranian Refugees)과 계속 연락하게 되었습니다. IFIR은 원래 알고 있었습니다. 그곳과 잦은 연락을 한 결과, 2005년 저는 한국의 대표직을 받게 되었습니다. 처음 활동을 시작할 당시에는 저의 신상정보, 전화번호, 메일 주소를www.hambastegi.org에 올려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고 연락을 주고받는 계기를 만들었습니다. IFIR 활동을 시작하면서부터 저는 이란의 문제에 대해서 더 많이 공부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인터넷과 채팅, 전화를 통해 외국에 이란 난민을 많이 만나고 대화하게 되었습니다. 또 현재는 운영되고 있지는 않지만 www.iranian.co.kr 에서 난민 분야로 활동을 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IFIR의 캠페인으로 서명을 받고 인권단체에 알려주는 활동을 하였습니다. IFIR을 소개하자면, IFIR은 이슬람공화국 지도층들에 대항하는 정치적 견해를 가지고 있는 이란의 비정부기구로, 그렇기 때문에 이란의 검찰 당국은 불법적인 단체로 보고 단속하고 있습니다. 전 세계 16개 나라에 42개 이상의 사무실이 있습니다. 1989년에 설립되어 전 세계의 난민을 보호하고, 이란 정부가 잘 못하고 있는 점을 세상에 공개합니다. 이란에서 행해지는 반인간적인 사형, 고문, 석살(Stoning, 돌을 던져 죽임)에 대하여 인권단체에 알리고 반대하며 예방하는 여러 가지 활동을 펼칩니다. 그를 위해 대사관 앞에서의 시위, 미팅, 캠프 등을 개최합니다. 뿐만 아니라 난민비호국에 다양한 정보를 제공합니다. 그리고 이란 여성과 어린이의 권리를 옹호하는 일을 합니다. 다른 나라에서 비호를 신청하는 것은 이란에서는 범죄나 다름 없습니다. 비호신청자들은 이란을 배신한 사람들이며, 이란으로 돌아가면 죽어야만 합니다. 그들은 다른 나라에서도 정치적인 활동을 이어나가기 때문에, 이란에 돌아갈 경우 굉장히 가혹하고 심한 처벌과 억압을 받습니다. 2005년부터 지금까지 저는 전화나 직접대면을 통해 여러 차례 위협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활동과 관련하여 첨부서류 ‘The Australian-students suspected of spying for Iran’, ‘country advice Iran’,를 참고해주시기 바랍니다. http://www.theaustralian.com.au/news/nation/students-suspected-of... 저는 이란에서 2009년 6월 초에 있었던 대통령선거로 인하여 2009년 6월 28일부터 그 이후 3주 간 주말을 이용하여 대사관 앞에서 데모를 하였습니다. Ahmadinejad 대통령은 부정선거 혐의 의심을 받고 있는 가운데 다시금 권력을 잡을 수 있었습니다. 이에 대한 대중들의 소리가 이란의 광범위한 지역에서 시위를 불러 일으켰습니다. 이 사태에 대응하기 위해 이란정부가 공급한 폭력적인 무기사용은 곧 다른 나라에 있는 이란 디아스포라들 사이에서 또 다른 시위를 불러일으킨 것입니다. 우리는 특정 정당을 지지한 것이 아니라, 이슬람공화국 자체가 필요 없다고 주장하면서 ‘카메네이(Khamenei)는 죽어라. 이슬람공화국은 물러가라.’고 구호를 외쳤습니다. 그리고 데모 당시 한국 연합신문이 우리를 취재하여 제 모습이 나온 데모 사진을 기사에 올렸고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POD&mid=etc&oid=001&aid=0002737014 , SNS와www.forum.iranian.co.kr를& www.iranian.co.kr를 통해서도 우리의 뉴스가 전해졌습니다www.forum.iranian.co.kr를& www.iranian.co.kr를 통해 한국에서의 데모는 이렇게 알려졌고 동영상이 게시되기도 하였습니다. 유투브와 페이스북 등의 온라인 사이트에도 관련 자료들이 올라갔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첨부서류 기사와 CD를 참고해주십시오. 제가 데모를 하고 조금 지나서 그 문제는 끝이 났습니다. 하지만 그 다음 제 친구가 이란 대사관으로 여권을 바꾸러 갔을 때 그들이 제 얼굴이 나온 기사를 보여주며 저의 소재를 물어보았다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친구는 모른다고 대답하였습니다. 그 뒤 전화가 왔었고, 이란 대사관에서 저를 찾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문제는 저 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있습니다. 첨부한 서류를 참고해주십시오. "Iranian Students Living in Austeralia held on trips back to iran " http://www.theaustralian.com.au/news/nation/iranian-students-living... 이러한 활동을 하였기 때문에 저는 이란으로 돌아가면 너무 위험합니다. 그 사람들은 제가 한국에서 어떤 정치적 활동을 했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란에 있는 제 가족을 너무 걱정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가족에게 연락을 못하고 있습니다. 조카들이 너무 보고 싶지만 아이들이 위험해질까 봐 전화를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저는 2005년에 제 친구 집인 미아삼거리에 가서 친구와 함께 살았습니다. 그곳의 신성교회에서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2006년 10월 1일, 예수님은 저를 선택하셨습니다. 저는 세례를 받았습니다. 이것 때문에 제 삶은 많이 변하게 되었습니다. 제 삶에 희망이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한국에 살면서 예수님이 저를 보호해 주셨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제가 한국에 지내면서도 큰 일이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이란 법에서는 이슬람 종교를 바꾸면 그 사람을 모르타드(mortad-배교자)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은 죽어야 합니다. 지금까지 이란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그러한 이유로 교도소에서 고문 받고 있으며 죽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혹 그렇지 않더라도 그의 일생의 삶은 너무 위험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동참해 살해되거나 이란의 비밀청부업자에 의해 암살됩니다. 이슬람은 세계에서 유일한 최고의 종교이기 때문에 이를 떠나 다른 종교로 개종한다는 것은 죽음으로 다스려야 한다고 보는 것입니다. 참고자료‘상상하기도 싫은 일이 이란에서 일어나고야 말았다.’를 참고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예전에 미아삼거리의 친구 집에 지낼 당시, 제가 IFIR 활동을 하고 교회에 다닌다는 사실 때문에 그 친구는 저에게 화가 많이 났었습니다. 제가 IFIR활동을 하기 때문에 그 친구는 함께 산다는 이유 만으로 위협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제가 교회에 가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결국 저는 그 사람과 함께 산 지 7-8개월 만에 원수가 되어 따로 살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에도 종종 만나는 기회가 있었는데 그 때마다 저를 모욕하고 괴롭게 했습니다. 지금 그는 이란으로 돌아갔습니다. 그 친구는 제가 했던 활동과 IFIR에 대해 잘 알고 있었고 저의 정치적인 견해, 종교 문제까지 도 상세히 알고 있었기 때문에 저와 불화를 빚은 이후 저에 대한 이와 같은 정보들을 자신의 귀국 시기에 이란 대사관을 통해, 또는 이란 보안 당국 등에 직접 제공했을 수 있습니다. 이제 제 삶은 정말 위험해졌습니다. 그래서 제 난민 신청 사유를 결론 내리자면, 첫째, 저는 1986년부터 1994년까지 앞서 기재한 사실과 같이 정치적 활동을 하여 고문 등을 받았습니다. 저는 그 과정에서 사실을 말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이란이라크전쟁(basijy)에 참전하였기 때문에 그 사람들이 저를 의심하였지만 저를 석방시켜주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제가 대학 재학 중(1997년) 정치적인 발언을 하면서 이란 당국에서 세계 다른 나라를 테러하라고 지시한 것이 맞다는 발언을 하였는데, 그 동안 저를 감시해오던 비밀경찰들은 이때 저를 지목하여 죽이려고 했습니다. 제가 이란에서 한국으로 탈출할 당시, 그 사람들은 제가 어디로 가는지 몰랐습니다. 하지만 2002년 김대중 대통령 정부 때 불법체류자를 사면하고 비자를 받게 해 주면서, 제가 서울에 있는 대사관에서 여권을 갱신받고 비자를 얻은 얼마 후에 이란에 있는 어머니의 전화를 받았는데 비밀경찰들이 집으로 세 차례나 들이닥쳐 샅샅이 조사를 하고 갔다고 하였습니다. 그들은 무자헤딘에서의 제 비밀이름을 알고 있었다고도 했습니다. 여권을 바꿨기 때문에 제가 한국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과거 이란에서 제가 한 모든 반정부활동을 알고 있습니다. 모자헤딘(M.P.O.I)을 지원하고, 이슬람공화국 반대 시위와 정권에 대한 반체제 선동에 참가했었기 때문에, 이란으로 가게 되면 저는 체포되어 극한의 처벌이나 죽음에 직면하게 될 것입니다. 둘째, 제가 금지조직인 IFIR에서 활동했기 때문에 그곳으로부터 제 이름과 전화번호를 다 알 수 있습니다. www.hambastegi.org저의 정보와 정치활동이 다 공개되어 있기 때문에 저에 대한 것을 쉽게 알아낼 수 있습니다. 이란 정부는 이슬람공화국에 반대하는 정치조직 및 반체제선동자가 이란으로 돌려보내질 경우 아주 심각한 처벌과 사형을 받게 됩니다. 셋째, 2009년 6월 주한이란대사관 앞에서 이슬람공화정부와 그 고위지도층들에 반대하는, 한국 에서는 처음 이루어진 시위에서, 저는 이란 사람들을 위해 이슬람공화국의 퇴진을 요구했습니다. 대사관에서는 시위 참가자들이 누구인지 샅샅이 조사했습니다. 한국 언론에서 기사화하여 인터넷 뉴스에 나왔기 때문에 저를 찾기는 어렵지 않습니다. 저는 이슬람공화국정권과 최고 지도층에 대해 반대했기 때문에 이란으로 돌아가면 극심한 정도의 처벌을 받게 될 것입니다. 넷째, 제가 기독교로 개종했기 때문에 저는 이란으로 돌아가면 생명에 위협을 받습니다. 이슬람은 배교가 금지되어 있고 가장 큰 죄로 간주됩니다. 이란에도 개종하는 이슬람교도가 많지만,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공개적으로 ‘나는 무슬림이 아니다. 나는 크리스찬이다.’라고 하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의 개종 여부에 대해, 그 사람이 말하지 않고는 알지 못합니다. 신앙은 개인적인 것이지만 이슬람이 국교인 이란에서는 정치적입니다. 정치로서의 이슬람은 사회와 모든 사람들을 그들이 정한 법칙에 강제로 따르게 하는 종교입니다. 저는 정치적 활동을 했다는 이유를 배제하고도, 개종한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사형선고를 받을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제가 한 이 모든 진술은, 제가 이란으로 돌아간다면 저의 삶이 통째로 위협받을 수 있는, 사실들입니다. 그러므로 한국정부는 저의 난민지위를 인정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H0SSEIN JAVAHERYN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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